재벌집 막내 아들로 알아보는 1999년 코스닥 150배 신화에서 2025년 상장폐지 실질심사까지, 한국 자본시장 27년의 축약사
1. 버블의 제왕, 새롬기술
1999년, IMF 외환위기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대한민국에 '인터넷'이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KAIST 출신들이 설립한 벤처기업 새롬기술은 PC통신 시절 '새롬 데이타맨'으로 이미 이름을 알린 회사였다. 1994년 팩스기기 없이 PC로 팩스를 보내는 '팩스맨'으로 시작해, PC통신 에뮬레이터 데이타맨으로 소프트웨어 업계의 '무서운 아이들'로 불렸다.
그러나 진정한 신화는 1999년 10월, 값비싼 국제전화를 인터넷으로 무료로 걸 수 있는 '다이얼패드' 서비스를 미국 현지법인을 통해 시작하면서 열렸다. 당시 국제전화 요금이 '요금 폭탄'이라 불리던 시절, 웹사이트에서 별도 설치 없이 무료로 전화를 거는 서비스는 출시 2개월 만에 회원 100만 명을 돌파했고, 최고 1,400만 명까지 가입자가 폭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가 타임라인 - 5개월 만의 150배
| 시점 | 주가 | 비고 |
|---|---|---|
| 1999.08 | 2,300원 (상장가) | 코스닥 상장, 액면가 500원 |
| 1999.10 | 1,890원 | 다이얼패드 미국 서비스 개시 |
| 1999.11 | 약 30,000원 | 코스닥 최초 10만 원 돌파 목전 |
| 1999.12 | 약 120,000원 | '새롬재벌' 신조어 등장 |
| 2000.01 | — | 삼성그룹, 유상증자 80만 주를 주당 11만 원에 인수, 2대 주주 등극 |
| 2000.03 초 | 282,000원 (고점) | 시가총액 약 3조 7,000억 원 |
| 2000.12 | 약 5,000원대 | 고점 대비 -98% |
'닷컴'이라는 말만 붙이면 주가가 오르던 시절, 새롬기술의 주가는 1999년 10월 1,890원에서 불과 5개월 만인 2000년 3월 28만 2,000원까지 치솟았다. 약 150배(액면가 기준으로는 368배)에 달하는, 한국 증시 역사상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상승률이다. 당시 시가총액은 3조 7,000억 원에 육박하며 현대자동차를 추월했고, 금호·롯데·동아·코오롱 등 대기업 그룹의 시가총액 합계를 넘어섰다. 일부 시점에는 재계 서열 1위 삼성전자를 잠시 추월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황제주', '코스닥의 기적'이라는 수식어가 매일 언론을 장식했고, '새롬기술 주가 = 코스닥지수'라는 말까지 나왔다.
숫자로 보면 광기는 더 선명하다. 당시 새롬기술의 연간 순이익은 4억 원 수준에 불과했다. PER은 8,000배를 넘었다. 유상증자로 확보한 3,700억~3,800억 원의 현금이 회사의 실체였고, 영업 현금흐름은 사실상 없었다.
버블은 회사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1998년 말 7조 9,000억 원이던 코스닥 시가총액은 1년 만에 100조 원을 돌파했고, 코스닥지수는 2000년 3월 10일 2,925.50이라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 25년이 지난 지금도 회복하지 못한 수치다.
(몇 년 전 인기를 끈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등장한 '뉴데이터테크놀로지'는 바로 이 새롬기술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2. 버블의 붕괴와 벤처신화의 추락
2000년 3월 닷컴 버블 붕괴가 시작되자 새롬기술의 주가는 28만 2,000원에서 수개월 만에 5,000원대로 수직 낙하했다. 홍보에 열을 올렸던 다이얼패드는 실제로는 수익 모델이 부재했다.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하자 이용자가 이탈했고, 회사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약 2,000억 원을 쏟아부었지만 회생에 실패했다. 미국 자회사 다이얼패드는 2001년 회사정리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핵심 사업은 결국 매각됐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이었다.
분식회계의 실체
검찰 수사 결과, 창업자 오상수 대표는 2000년 2월 유상증자를 앞두고 1999년도 재무제표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는 102억 원의 손실을 내고도 허위 세금계산서 발행 등의 수법으로 10억여 원의 흑자가 난 것처럼 재무제표를 허위 작성·공시했다. 미국 자회사 다이얼패드 지분율도 실제보다 부풀려 공시했다. 4만 6천여 명의 투자자가 이 허위 사실을 믿고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삼성 등 대기업과 기관투자가들도 대규모 투자 후 수백억 원대 손실을 입었다.
오 대표는 2002년 11월 20일 배임 및 증권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지 정확히 1년 만이었다. 그는 "분식회계는 회계방법상 차이에서 빚어진 오해"라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KAIST 석사과정 중 28세에 창업해 코스닥 황제주를 만들어낸 벤처신화의 주인공은 그렇게 법의 심판대에 섰다.
3. 자본가의 등장 - 솔본의 적대적 M&A
버블이 꺼지고 창업자가 몰락했지만, 새롬기술의 몸집에는 유상증자로 확보한 수천억 원의 현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자금을 노리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 인물이 바로 홍기태 당시 새롬벤처투자 사장, 현 솔본 회장이다.
도이치뱅크를 거쳐 엔젤 투자가로 활동하던 홍 회장은, 오 대표가 미국에서 다이얼패드 회생에 매달리는 사이 새롬기술 지분 11%를 장내에서 사들였다. 오 대표는 우호지분 확보로 13%까지 맞춰 맞서려 했으나, 검찰 소환 이후 우호지분이 이탈하며 지분율이 7%로 급감했고, 2002년 11월 20일 — 구속 당일 — 경영권을 홍 사장 측에 넘긴다고 발표했다. 창업자의 구속과 경영권 이양이 같은 날 이뤄진, 한국 벤처사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경영권을 손에 넣은 홍 회장은 새롬기술을 지주회사형 투자회사로 탈바꿈시켰고, 2004년 3월 사명을 '솔본(Solborn)'으로 변경하며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4. 솔본의 민낯 - 투자자인가, 알박기인가?
솔본으로 변신한 이후 홍 회장은 남은 자금으로 인피니트헬스케어(구 인피니트테크놀로지), 프리챌, 포커스신문사(더데일리포커스)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2003년 솔본에 흡수된 프리챌은 2011년 파산했고, 금융업 진출을 위해 70억 원에 인수한 솔본저축은행은 3년 만에 되팔았다. 투자 기업 중 가시적 성과를 낸 상장사는 인피니트헬스케어와 키네마스터 정도다.
205억 원 자문료 구조
솔본 그룹의 수익 구조는 의문투성이였다. 핵심 수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항목 | 내용 |
|---|---|
| 누적 용역수수료 | 인피니트헬스케어가 10여 년간 솔본에 지급한 경영자문·자산운용 수수료 약 205억 원 |
| 솔본 직원 수 | 4명 (임원 포함 11명), 금융투자업 라이선스 없음 |
| 수수료 추이 | 2020년 18억 → 2024년 34억 → 2025년 3분기 누적 약 26억 원 |
| 2025년 계약 조건 | 위탁액의 2% + 초과수익의 20% (PEF·VC 수준의 보수 구조) |
| 오너 일가 지분 | 홍기태 회장 및 특수관계인의 솔본 지분율 60.26% |
| 이사회 절차 | 이사회 결의 없이 용역비 지급, 논란 후 2025년 8월 사후 추인 |
솔본이 어떤 자문을 제공했는지, 수수료 산정 기준이 무엇인지는 공개된 바 없다. 인피니트헬스케어 경영에 수년간 관여했던 인사조차 "구체적인 자문을 받은 적이 없고, 기본적인 방향성 보고서조차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자문수수료의 상당 부분은 홍 회장이 인피니트헬스케어 자금으로 미국 지수 ETF(VOO, QQQ, SPY 등)에 투자한 대가 성격이었고, 그 수수료는 배당·급여 형태로 오너 일가에 흘러갔다. 홍 회장의 배우자와 딸이 솔본과 인피니트헬스케어 양쪽 이사회에 이름을 올린 채였다.
인피니트헬스케어는 PACS(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 분야에서 상급종합병원 점유율 75%를 확보한 알짜 기업이다. 2024년 매출 1,016억 원, 영업이익 139억 원을 냈다. 그러나 최근 5년간 소액주주에게 배당은 한 차례도 없었고, 영업이익의 22~42%가 매년 지배주주 솔본으로 빠져나갔다.
2025년, 판이 흔들리다
원문이 다룬 구조는 2025년 하반기에 임계점에 도달했다.
- 2025.06 — 소액주주들이 행동주의 플랫폼 헤이홀더를 중심으로 약 26%의 의결권을 모아 감사 교체 안건을 상정. 회사는 전자위임장 효력을 돌연 부정하며 안건을 무산시킴
- 2025.11.28 — 한국거래소, 인피니트헬스케어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 전 공동대표에 대한 배임 소송 공시가 계기였으나, 수수료 논란·전자위임장 무력화 등 지배구조 전반이 문제로 지목됨. 주식 거래 정지
- 2025.12.09 — 경영권 분쟁 소송 관련 정정 지연공시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 2025.12.17 — 인피니트헬스케어, 이사회를 열어 솔본과의 2025년도 경영자문 업무용역계약을 합의 해제. 기지급 수수료 약 26억 원 전액 환급 및 향후 유사 계약 미체결 선언
- 2025.12.19 — 거래소에 개선계획서 제출. 거래소는 2026년 1월 말까지 상장폐지 또는 개선기간 부여를 결정할 예정이었음
영업이익 139억 원을 내는 회사가 실적이 아닌 지배구조 때문에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것이다.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는 "홍 회장이 소액주주 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거래 정지를 유도한 자작극"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차입으로 주식을 매집한 주주들에게 거래 정지는 반대매매로 직결되는 치명타이기 때문이다.
25년 전 4만 6천 명의 투자자가 허위 공시에 당했다면, 2025년의 소액주주 1만 2천여 명은 합법의 외피를 쓴 내부거래 구조와 싸우고 있다. 수법은 세련되어졌지만, 소액주주의 돈이 지배주주에게 이전되는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5. 교훈 - 버블과 자본의 그림자
새롬기술에서 솔본으로 이어지는 27년의 여정은 한국 자본시장에 세 가지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첫째, 기술에 대한 맹신과 '묻지마 투자'는 언제나 거품을 낳고, 거품은 반드시 꺼진다.순이익 4억 원짜리 회사에 PER 8,000배를 지불한 시장은, 150배의 전설과 함께 4만 6천 명의 피눈물을 남겼다. 코스닥지수 2,925라는 2000년 3월의 고점은 4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요원하다. AI 시대의 오늘, "혁신 테마만 붙으면 실적과 무관하게 오르는" 그 광경이 낯설지 않다면, 그것이 바로 이 이야기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둘째, 버블의 잔해 위에 등장한 자본가들은 종종 '투자'라는 이름으로 '착취'를 합리화한다.직원 4명, 금융업 라이선스도 없는 지주회사가 10년간 205억 원의 자문료를 챙기고, 그 돈이 배당과 급여로 오너 일가에 귀속되는 구조는 결국 거래소의 상장폐지 실질심사라는 형태로 청구서를 받았다.셋째, 그러나 시장은 느리게라도 작동한다. 2025년 소액주주들의 조직화는 감사 교체 시도, 임시주총, 거래소 심사를 거쳐 결국 205억 원 수수료 구조의 계약 해제와 자문료 반환이라는 실질적 결과를 끌어냈다. 완전한 승리는 아니다. 오너 일가의 지분율은 여전히 압도적이고, 표 대결의 구조적 열세도 그대로다. 그러나 25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견제 장치 — 전자공시, 행동주의 펀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 가 이제는 작동하고 있다.
새롬기술이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그 버블의 DNA는 솔본이라는 새로운 껍질을 입고 오늘도 코스닥 시장에 존재한다. 그리고 시장은 여전히 '차세대 새롬기술'을 찾아 헤맨다. 버블은 반복되고, 자본은 그 틈새를 파고든다. 다만 이번에는, 소액주주들도 조직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가 새롬기술의 이야기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참고자료
- 뉴시스, "닷컴버블의 황제 '새롬기술'을 아시나요 [급등주지금은]" (2025.10)
- 뉴시스, "역대 가장 많이 오른 주식은? 150배 새롬기술" (2021.01,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 자료)
- 뉴스웨이, "'그땐 그랬지' 새롬기술 6개월간 150배, 버블의 추억" (2020.12)
- 더커넥트머니, "1999년 새롬기술, 상장 후 6개월간 150배 폭등에 숨겨진 비밀 [그때 그 주식]" (2025)
- 법률신문, "'새롬' 오상수 사장 구속" (2002.11.22)
- 한국일보, "벤처신화의 몰락 — 새롬기술 오상수 사장 분식회계 혐의로 영장" (2002.11.21)
- 경향신문, "새롬, 쓸쓸한 몰락 막내린 '벤처신화'" (2002.11.20)
- 한국경제, "오너 일가에 흘러간 수상한 205억…상폐 위기 몰렸다 [솔본그룹의 민낯]" (2025.12.15)
- 한국경제, "탄탄한 인피니트가 돌연 상폐 위기에 몰린 사연 [솔본그룹의 민낯②]" (2025.12.05)
- 딜사이트, "[상폐 위기 기업 진단] 오너리스크 겨눈 인피니트헬스케어 소액주주들" (2025.12.18)
- 이데일리, "인피니트헬스케어, 솔본과 경영자문 계약 해제…자문료 전액 회수" (2025.12.17)
- 더벨, "[지배구조 분석] 싱겁게 끝난 인피니트헬스케어 임시주총, 내부통제 리스크 '여전'" (2025.12)
- 데일리팝, "[위기의 기업] 솔본-인피니트헬스케어 사태 '막전막후'" (202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