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27일 단 하루 동안 엔비디아 시가총액 6,000억 달러가 증발했다. 미국 증시 역사상 단일 종목 기준 최대 하락폭이었다. 진앙은 중국 항저우의 18개월 된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였다. 비슷한 시기 미국 월스트리트에서는 또 다른 '이상한' 회사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순이익을 추월했다. 3,500명 남짓의 자기자본 트레이딩 회사, 제인스트리트(Jane Street)다.
언뜻 한쪽은 AI 모델 회사, 다른 한쪽은 HFT(초고빈도 매매) 헤지펀드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기면 두 회사는 같은 조직 원형(原型) 임이 드러난다. 미국의 한 IT 매체가 "제인스트리트가 AI를 했다면?"이라고 표현한 것은 비유가 아니다. 둘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일으키는 같은 종(種)이다.
1. 출발점이 같다 — 둘 다 '퀀트'에서 시작했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Liang Wenfeng)은 2015년 저장대 동기들과 함께 퀀트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High-Flyer)를 세웠다. 하이플라이어는 AI로 시장 추세를 예측하는 알고리즘 트레이딩 회사였고, 한때 자산 120억 달러를 굴렸다. 량은 짐 사이먼스 평전 중국어판 서문을 직접 쓸 정도였고, 일이 막힐 때마다 사이먼스의 "가격을 모델링할 방법은 반드시 있다"는 말을 되새겼다고 고백했다. 2021년부터 엔비디아 GPU 1만 장을 사 모은 것은 트레이딩 인프라가 곧 AI 인프라였기 때문이다.
제인스트리트 또한 1999년 채권 트레이더 몇 명이 시작한 자기자본 매매 부띠끄다. 두 회사 모두 시장 가격은 수학으로 풀 수 있다는 명제에서 출발했다. 차이는 풀어낸 시장이 ETF·채권이었는가, 언어 모델이었는가일 뿐이다.
2. 적은 인원으로 거인을 무너뜨린다
제인스트리트는 약 3,500명으로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의 순이익을 넘었다. 직원 1인당 평균 보수는 수십억 원에 달한다. 딥시크는 더 극단적이다. V3 모델 훈련 비용이 600만 달러로, GPT-4의 약 6% 수준이었다. R1은 H800 GPU 2,048장만으로 만들어졌다.
서구 빅테크가 "스케일이 곧 정답"이라며 1,000억 달러짜리 데이터센터를 외치는 동안, 두 회사는 자본 집약이 아닌 알고리즘 효율로 승부했다. HFT가 마이크로초 단위 가격 차이를 잡는 게임이라면, 딥시크의 MoE와 멀티헤드 잠재 어텐션은 GPU 1장당 효율을 짜내는 게임이다. 본질은 동일하다.
3. 위계 없는 '수학 천재' 조직
제인스트리트는 CEO가 없는 독특한 운영 구조에, 수학 올림피아드 출신을 대거 채용해 '수학 천재들의 회사'로 불린다. 딥시크 역시 사전에 정해진 역할이나 경직된 위계 없이 보텀업으로 운영되며, 멀티헤드 잠재 어텐션 기술 자체가 한 젊은 연구원의 개인적 관심에서 나왔다고 량은 밝힌 바 있다. 딥시크는 해외 경력이 전무한 신규 박사들과 올림피아드 메달리스트를 주로 채용한다. 제인스트리트가 IMO·IOI 메달리스트를 고등학생 때부터 발굴하는 것과 사실상 같은 인재 전략이다. 두 회사 모두 이력서의 권위가 아닌 문제 해결 능력으로 사람을 본다.
4. 규제의 그늘에 산다 — 세 개의 사건이 보여주는 것
여기서부터가 우리 시장과 직접 닿는 부분이다. 제인스트리트의 '창조적 파괴'가 자랑스러운 효율의 산물만은 아니었다. 최근 3년간 한국·인도·미국 세 곳에서 동시에 규제 칼날이 들이닥쳤고, 그 패턴이 놀라울 만큼 일관된다.
4-1. 2019년 SK하이닉스 블록딜 사건 — 한국 시장의 첫 경고
2019년 10월, SK하이닉스 블록딜을 둘러싸고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수상한 공매도 패턴이 적발됐다. 한국 금감원은 2019년 10월 SK하이닉스 주식 블록딜 과정에서 규정을 위반한 글로벌 펀드 3곳을 제재했다. 제인스트리트는 같은 달 블록딜과 관련해 "시장 교란 조항 위반"으로 21만 5,000달러의 과징금을 받았다. 세간티(Segantii)는 115만 달러, 리갈 펀드 매니지먼트도 함께 제재 대상에 올랐다. 세 펀드 중 하나는 무차입 공매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검찰 수사까지 갔다.
본질적으로 이 사건은 블록딜 정보가 시장에 공개되기 전에 공매도로 미리 포지션을 깐 뒤, 할인된 블록딜 물량으로 커버해 차익을 챙긴 구조다. 한국 개인투자자가 영문도 모르고 당한 폭락의 메커니즘이 거기 있었다. 금감원이 환산한 한국 시각의 의미는 분명했다 — 글로벌 HFT 펀드가 한국 시장을 정보 비대칭을 활용한 사냥터로 보고 있었다는 것.
4-2. 2022년 테라-루나 붕괴 — 그리고 2026년 제기된 내부자 거래 소송
블록딜이 한국 시장의 신호탄이었다면, 테라-루나는 글로벌 차원의 결정타다. 테라폼 랩스 파산관재인 토드 스나이더(Todd Snyder)는 2026년 2월, 제인스트리트가 테라폼 내부 정보를 이용해 거래를 선행 매매(front-run)했고, 그 결과 2022년 UST와 루나 붕괴를 가속화했다고 뉴욕 남부지법에 제소했다. 사건번호 1:26-cv-1504.
소장이 묘사한 시퀀스는 충격적이다. 2022년 5월 7일, 테라폼이 커브3풀(Curve3pool)에서 1억 5,000만 UST를 조용히 인출했다. 그로부터 단 10분 뒤, 제인스트리트와 연결된 지갑이 같은 풀에서 8,500만 UST를 인출했다. 이것이 시장 패닉을 촉발했다. 5월 9일에는 제인스트리트의 직원 브라이스 프랫(Bryce Pratt)이 도권(Do Kwon)과 테라폼 팀에 직접 메시지를 보내 비트코인이나 루나 매수 의향을 표시했다.
핵심 인물 프랫의 경력에 주목해야 한다. 프랫은 테라폼 인턴 출신으로 2021년 9월 제인스트리트에 정식 입사했다. 소장은 그가 두 회사 사이의 백채널(backchannel) 역할을 했고, 제인스트리트가 이 채널을 통해 중요한 미공개 정보를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피고는 제인스트리트와 공동창업자 로버트 그래니에리(Robert Granieri), 직원 프랫과 마이클 황(Michael Huang)이다. 청구 원인은 상품거래법(Commodity Exchange Act), 증권거래법(Securities Exchange Act), 사기, 부당이득 반환이다. 한편 스나이더는 2025년 12월 점프 트레이딩(Jump Trading)도 같은 맥락으로 별도 제소했고, 점프가 제인스트리트에 정보를 회람시키는 통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제인스트리트의 대응은 예상 가능했다. 2026년 4월 23일 제기한 각하 신청에서 "이 사건은 테라폼 자신이 시장에 저지른 사기의 책임을 제인스트리트에게 떠넘기려는 시도"라고 반박했다. 또한 자사의 최대 UST 매도가 알려진 미공개 정보가 시장에 공개된 후 10분 뒤에야 일어났기 때문에 "자기모순(self-defeating)"이라고 주장했다. 도권은 이미 15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며, 테라폼은 SEC에 44억 7,000만 달러 벌금에 합의했다.
법적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400억 달러가 일주일 만에 증발한 사건의 핵심 분기점마다 제인스트리트가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포지션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테라-루나에 노출된 개인투자자 수십만 명에게 이 사건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4-3. 2025년 인도 SEBI 시장조작 과징금
마지막 퍼즐은 인도다. 2025년 7월, 인도 증권거래위원회(SEBI)는 제인스트리트에 시장 조작을 이유로 5억 6,630만 달러(약 7,5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인도 옵션 시장에서 기초자산과 파생을 동시에 움직여 만든 차익 구조가 문제였다. 한국에서의 과징금 21만 달러와 비교하면 단위가 3,000배다 — 즉, 한국 규제가 너무 약했거나, 인도가 너무 셌거나 둘 중 하나다.
세 사건의 공통 구조는 명확하다. 제인스트리트는 알고리즘 우위와 정보 우위를 결합해, 규제 카테고리가 미처 정의하지 못한 회색지대에서 이익을 추출한다.그리고 적발되더라도 과징금은 매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딥시크 역시 비슷한 구도다. "연구에만 집중한다"는 자세 덕에 중국 소비자용 AI 규제 일부를 피해 가면서, 동시에 NYT 보도에 따르면 인민해방군 산하 연구소 출신 인력이 다수 포진해 있다. 둘 다공식 카테고리 밖에서 시장 핵심 인프라가 된 회사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가 위험한 이유는 정확히 이 지점이다. 파괴자가 너무 커진 뒤에야 규제가 따라간다.
5. 두 세계가 만나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신호는 작년 9월에 나왔다. 제인스트리트가 딥시크 출신 퀀트를 홍콩에서 채용했다. 보도는 "딥시크의 성공이 AI 기업들의 퀀트 금융 인력 유입을 촉발한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트레이딩 회사가 AI 인재를 데려가고, AI 회사가 퀀트 인재를 데려간다. 두 산업의 경계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정호 교수의 방송 말미에 의미심장한 인용이 나온다. 에든버러대 도널드 매켄지 교수는 현재의 금융시장이 "올머신 생태계(all-machine ecology)"로 전환했다고 진단했다. 인간이 가격을 두고 흥정하던 시대는 끝났고, 기계가 가격 변동을 주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같은 진단이 이제 AI 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제인스트리트가 ETF·블록딜·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보여준 것을 딥시크가 모델 학습 시장에서 재현하고 있을 뿐이다.
서학개미든 K-스타트업 창업자든 직시해야 할 사실은 이것이다. 21세기의 창조적 파괴는 더 이상 거대 기업이 일으키지 않는다. 작고 빠르고 수학적이며 자본 효율적인, 그러면서 규제 카테고리에 들어맞지 않는 조직이 일으킨다. 제인스트리트와 딥시크는 우연히 닮은 게 아니라, 이 시대가 만들어내는 같은 형태의 두 표본이다.
특히 한국 시장 참여자에게 SK하이닉스 블록딜 사건과 테라-루나 소송은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알고리즘과 정보 우위로 무장한 글로벌 행위자에게 한국·신흥국 개인투자자는 가장 매력적인 사냥감이다. 21만 달러짜리 과징금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 비싼 한국 시장 진입료 정도 — 우리는 이제 알아야 한다.
버핏이 알고리즘 시대 개인투자자에게 "장기 보유라면 별 차이가 없다"고 답한 것은 점잖은 회피다.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조직이 나올 수 있는가, 그리고 한국 시장은 이런 조직으로부터 자국 투자자를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두 질문이 향후 10년 한국 자본시장과 AI 산업의 분기점을 결정할 것이다.
참고 자료
- MBC 〈손에잡히는경제〉, "3,000명이 15조 버는 미국 금융사" (2026.5.13, 박정호 교수 해설)
- Bloomberg, "Segantii, Point72 Among Hedge Funds Fined for Korean Trades" (2024.5.2)
- Hedgeweek, "Segantii, Point72 et al fined for Korean trades" (2024.5.3)
- WSJ / The Block / DL News / Disruption Banking, 테라폼 v. 제인스트리트 소송 보도 (2026.2~4)
- CoinDesk, "Jane Street faces claims of insider trading that sped up Terraform's 2022 collapse" (2026.2.24)
- SteelEye, "Jane Street Fine — $566.3m — Market Manipulation — SEBI" (2025.7)
- Fortune, "Meet DeepSeek founder Liang Wenfeng" (2025.1.27)
- Bloomberg, "Chinese Quant Whiz Built DeepSeek in the Shadow of a Hedge Fund Rout" (2025.1.28)
- eFinancialCareers, "Jane Street hired a quant from Deepseek" (2025.9)
- Wikipedia: DeepSeek, High-Flyer, Liang Wenf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