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가장 큰 무기이자 가장 큰 약점은 같은 곳에 있다. 바로 '돈이 없다'는 사실이다. 막 출발한 회사는 대기업 수준의 연봉을 줄 수 없다. 그럼에도 최고의 개발자, 기획자, 자문 인력을 데려와야 한다. 이 모순을 푸는 장치가 바로 스톡옵션과 베스팅이다.
스톡옵션은 미래의 일정한 가격으로 자사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권리다. 회사가 성장해 기업 가치가 오르면, 받는 사람은 시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사서 차익을 얻는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초기 스타트업에서 급여 외 비금전적 보상 수단이 큰 역할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금 대신 '회사의 미래에 대한 지분'을 나눠주는 것이다.
하지만 지분을 그냥 통째로 줘버리면 어떻게 될까. 합류 한 달 만에 회사를 떠나면서 받은 주식을 그대로 들고 나가는 사람이 생긴다. 이른바 '먹튀'다. 실제로 Restricted Stock 같은 제도가 창업자나 주요 임직원에게 활용되는 핵심 이유가, 기껏 주식을 줬는데 열심히 일하지 않고 주식만 챙겨 손을 터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다. 이 위험을 통제하는 설계가 바로 베스팅이다.
베스팅(Vesting)과 클리프(Cliff) - 시간이 지나야 '내 것'이 된다
베스팅이란, 계약 시 부여하기로 한 주식이나 스톡옵션 수량을 여러 행사 기간으로 나눠 점진적으로 권리를 확정해 주는 것을 말한다. 핵심은 '소유권을 즉시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고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비로소 온전한 내 것이 된다.
여기에 짝을 이루는 개념이 클리프(Cliff)다. 클리프는 최초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최소 재직 기간이다. 영어 단어 그대로 '절벽'인데, 이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단 한 주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실무에서 자주 보이는 구조는 다음과 같다.
| 구조 | 클리프 | 베스팅 | 분할 방식 |
|---|---|---|---|
| 일반형(직원) | 1년 | 3~4년 | 1년 경과 후 매월/매분기 균등 분할 |
| 보수형 | 2년 | 4년 | 2년 후 50%, 3년 25%, 4년 만근 25% |
특히 한국은 상법상 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 후 최소 2년의 재직 기간을 거쳐야만 행사할 수 있도록 강행규정으로 정하고 있다. 이 기간은 임의로 줄일 수 없고, 연장만 가능하다. 즉 '2년은 일해야 행사가 시작된다'는 것은 회사가 임의로 만든 갑질이 아니라 법이 정한 최소선이다.
그렇다면 클리프와 베스팅을 거는 것은 회사의 횡포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보상을 받는 사람과 회사의 이해관계를 한 방향으로 정렬하기 위한 표준 장치다. "오래 남아 함께 회사를 키우면 그만큼 더 가져간다"는 약속이고, 동시에 "중간에 떠나면 채우지 못한 몫은 가져갈 수 없다"는 합의다. 새로운 인재를 모집하면서 스톡옵션에 베스팅 조항을 두는 것은, 따라서 예외적 조치가 아니라 오히려 두지 않는 쪽이 비정상에 가깝다.
역베스팅(Reverse Vesting) - 창업자에게도 적용되는 거울
직원에게 적용되는 것이 클리프 베스팅이라면, 창업자와 핵심 인력에게 적용되는 것이 역베스팅(reverse vesting)이다.
차이는 출발점에 있다. 창업자는 스톡옵션을 '받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설립되는 즉시 실제 주식을 손에 쥔다. 자문 인력 등에게도 현금 대신 초기 주식을 일정 조건으로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렇게 주식을 먼저 다 줘버리면 창업자나 핵심 인력이 받자마자 회사를 떠날 때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역베스팅은 이 순서를 뒤집는다. 주식은 먼저 부여하되, 아직 베스팅되지 않은(unvested) 주식에 대해 회사가 재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걸어둔다. 정해진 기간을 채우기 전에 회사를 떠나면, 그 미성숙 주식은 회사(또는 대표나 대표가 지정한 사람)가 도로 사올 수 있다. 회사에 오래 남을수록 재매입 대상이 되는 주식 수가 줄어들고, 베스팅이 완료된 주식은 더 이상 재매입 대상이 아니게 된다.
영미권 표준 계약서의 역베스팅 조항도 동일한 구조를 명문화하고 있다. "베스팅되지 않은 제한주식은 회사의 재매입 대상이 되며, 주식이 베스팅됨에 따라 더 이상 재매입 대상이 아니게 된다"는 문구가 그것이다. 흔히 쓰이는 일정은 '1년차에 25%, 나머지는 이후 매월 균등 베스팅' 같은 형태다.
여기서 핵심 질문에 답할 수 있다. 목표 기간을 채우지 못한 사람에게서 미성숙 주식을 액면가로 환수하는 것은 부당한가?
답은 '아니오'다. 그것이 애초에 계약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미성숙 주식은 보유자의 재산으로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다. 조건부 불완전 소유권일 뿐이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사가 정해진 가격(통상 액면가 또는 취득원가)에 도로 사오기로, 받는 사람이 처음부터 동의하고 서명한 것이다. 따라서 이 환수를 두고 "유망 기업 주식을 시장가의 몇 퍼센트에 헐값으로 넘겼다"고 비교하는 것은, 미성숙 지분을 마치 온전한 재산인 양 착각한 데서 오는 오해다. 시장가와 비교할 대상 자체가 아니다.
스타트업의 기본 생리를 알아야 한다
베스팅과 역베스팅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거래가 전부 의혹처럼 보인다. '왜 액면가에 넘겼느냐', '왜 회사가 도로 사가느냐', '시장가의 몇 퍼센트밖에 안 되지 않느냐' 같은 지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스타트업 보상 구조의 기본 문법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스타트업의 생리는 단순하다. 돈이 없으니 지분으로 보상하고, 지분을 함부로 들고 나가지 못하게 시간과 조건을 건다. 끝까지 함께한 사람에게는 성숙한 지분이 온전히 돌아가고, 중간에 이탈한 사람의 미성숙 지분은 회사로 돌아온다. 이 '주고-묶고-돌려받는' 사이클이야말로 한정된 자원으로 인재를 끌어모으고, 동시에 남은 구성원과 투자자의 지분을 보호하는 생태계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새 인재를 모집할 때 스톡옵션에 베스팅을 거는 것은 당연하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미성숙 주식을 액면가로 환수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불리하게 짜인 함정이 아니라, 모두가 처음부터 동의한 게임의 규칙이다.
다만, 만능은 아니다 — 짚어둘 한계
물론 "베스팅이니까 무조건 정당하다"는 식의 단순화는 경계해야 한다. 베스팅·역베스팅 구조 자체가 합법이고 보편적이라는 것과, 개별 거래가 모든 법적 쟁점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적어도 다음 세 가지는 별도로 따져야 한다.
첫째, 세법은 사적 계약에 우선한다. 베스팅 계약은 당사자 간 합의일 뿐, 세법보다 위에 있을 수 없다. 미성숙 주식을 액면가에 환수하더라도, 그 거래가 세법상 저가 양수·양도에 해당한다면 증여세나 양도소득세 문제는 계약과 무관하게 별도로 검토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창업자 주식의 83(b) election이 늘 함께 논의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 매수 주체가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미성숙 주식을 회사가 재매입하는 것과, 대표 개인이 사오는 것은 법적 성격이 다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이사의 자기거래나 충실의무 같은 회사법상 쟁점이 추가로 발생할 여지가 있다. 계약서에 '대표 또는 대표가 지정하는 자'로 적혀 있다 해도, 그 자체로 모든 회사법적 검토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공직·이해충돌 맥락에서는 잣대가 더 엄격해진다. 보유자가 공직자이거나 직무관련성이 있는 위치에 있다면, 거래의 시점과 정황은 사기업 간 거래보다 훨씬 까다로운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결국 베스팅의 구조를 정확히 아는 것은 두 방향 모두에 필요하다. 정상적인 스타트업 거래를 근거 없는 의혹으로 매도하지 않기 위해서도, 반대로 베스팅이라는 외피 뒤에 숨을 수 있는 예외적 쟁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스타트업의 기본 생리를 안다는 것은, 그 관행을 옹호하는 동시에 그 한계까지 분별할 줄 안다는 뜻이다.
참고 자료 (References)
- 헬프미 블로그 — 스타트업 CEO를 위한 스톡옵션 기초 가이드: https://www.help-me.kr/blog/article/%EC%8A%A4%ED%83%80%ED%8A%B8%EC%97%85%EC%9D%84_%EC%9C%84%ED%95%9C_%EC%8A%A4%ED%86%A1%EC%98%B5%EC%85%98_%EA%B8%B0%EC%B4%88%EA%B0%80%EC%9D%B4%EB%93%9C/
- ZUZU(주주) — 스톡옵션 베스팅 가이드: https://zuzu.network/resource/guide/vesting/
- ZUZU(주주) — 스타트업 스톡옵션 협상 시 고려할 point: https://zuzu.network/resource/blog/checkpoint-when-you-get-stockoption/
- 매쉬업벤처스 — 스톡옵션, 직접 부여해본 창업자의 가이드 (설계 가이드와 계약서 샘플): https://www.mashupventures.co/contents/stock-option-practical-guide-and-template
- 더올로그(법무법인) — 주식매수선택권 부여계약서 주요 조항: https://www.talaw.co.kr
- 법률사무소 화음 — 스톡옵션의 모든 것 (의미·부여절차·행사조건·세금): https://library.cello.bz/article/131-all-about-stock-option
- 벤처스퀘어 — 조건부 불완전 주식부여(Vesting): https://www.venturesquare.net/831513
- 벤처스퀘어 — 미국 진출 스타트업 법률 가이드: 스톡옵션이란: https://www.venturesquare.net/720847
- 벤처스퀘어 — 스타트업들이 알고 있어야 할 Vesting Acceleration(베스팅 가속화): https://www.venturesquare.net/852041
- The Startup Bible — 스톡옵션 개론 (Cliff vesting과 Reverse vesting): https://www.thestartupbible.com/2014/10/stock-option-101.html
- 창업자 주식과 베스팅 (83(b) election 포함): https://brunch.co.kr/@attorneysung/272
- Law Insider — Reverse Vesting Clause Samples (영문 표준 계약 조항): https://www.lawinsider.com/clause/reverse-vesting
본 칼럼은 일반적인 스타트업 보상 구조에 대한 설명이며, 특정 개인이나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개별 거래의 법적·세무적 평가는 구체적 사실관계와 전문가 검토가 필요합니다.